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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 후
70세 고희를 맞이한 살아 있는 아들이
아버지께 바치는 아! 진혼곡
내 11살의 생일이 막 지난, 그 더운 여름의 8월9일. 나가사키에서 피폭을 경험했다. 1944년에 아버지는 해군 징병에 소집되어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기사로 전속했다. 1943년, 초등학교 4학년 진급을 앞둔 3월에 어머니는 결핵으로 사망했고, 그 후 전쟁이 심해지고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한 지인의 권유에 따라 재혼했다. 당초 나는 새어머니의 언니댁에 맡겨져 구마모토(熊本) 부속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1944년 나가사키로 이주해 살고 있었는데, 구마모토 역시 전쟁이 더욱 격해진데다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다는 나의 바람으로, 1945년 3월에 나가사키의 이나사(稲佐)로 이주하였고 4월부터 아사히(旭) 초등학교 5학년으로 전학하였다. 학교 수업은 거의 없었고 식품은 가끔 배급되는 소량의 곡물 또는 고구마였다. 이것도 그나마 상황이 좋은 편으로 식품 사정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으며, 방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방공호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었다. 7월 하순 무렵 방공호에서 나와 2층의 방으로 올라갔을 때 불길한 전조가 있었다. 2층 기와가 깨지고 다다미 방 한가운데 묘비가 서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근처 묘지에 떨어진 폭탄의 영향으로 날라온 것이리라. 나는 이 일을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전쟁이 점점 치열해져 가니 후쿠오카의 시골인 히시노(菱野)에 있는 아버지의 본가로 나를 피난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이 있던 와중에 찾아온 운명을 좌우하는 1945년 8월 9일, 이날 미군은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그날도 내리쬐는 강한 햇살과 푹푹 찌는 더위로, 11시가 되기 조금 전 동급생 몇 명이 멱을 감으러 가자면서 찾아왔다. 언제나 배가 고팠기에 친구에게 뭔가 먹은 뒤에 따라간다고 말한 뒤, 집안으로 들어가 비상용이었던 볶은 콩을 먹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경보가 울리며 찾아온 엄청난 폭발음과 섬광 속에서 위기를 느끼고 있던 그 순간 공중으로 내 몸이 빨려 올라갔다. 지면에 강하게 내쳐지는 듯한 엄청난 충격에 의식이 몽롱해져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슬프게 울며 외치는,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라고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그 비통한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주저앉은 집에 깔려 심한 고통을 느꼈다. 쓰러진 집의 대들보의 일부가 내 어깨와 다리를 누르고 있었고 기와들이 나를 덮고 있었다. 그것들을 혼신의 힘으로 치우고 겨우 몸을 내밀어 보니 일대는 마치 지옥도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자욱한 흙 먼지. 불바다 속에서 나는 손발에 상처는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필사적으로 방공호에 들어갔으나, 거기에는 피부가 타 들어가 짓무르고 살인지 뼈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로 피를 쏟는 사람,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형상으로 끔찍하게 신음하는 사람, 이미 죽어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치료는커녕 먹을 것조차 없었다. 밤이 찾아왔지만 성냥불조차 없는 어둠 가운데, 방공호 속에서 사람들이 차례로 죽어갔다.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몇 시였는지 알 수 없는 깊은 밤, 폭발중심지인 우라카미(浦上)에서 출발한 아버지는 어디선가 주운 젖은 망토로 다 타 들어가버린 몸을 감싼 채 기듯이 방공호에 들어왔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탈진한 듯이 쓰러져 한마디 말도, 눈도 뜨지 못한 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으며, 그로부터 1주일 후에 숨을 거두었다. 향년 37세였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슬픔과 분한 마음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채 나무 조각들을 모아 아버지를 화장했다. 사람의 몸은 간단히 태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또다시 미군이 엄청난 폭탄을 떨어뜨릴 것이고 일본인을 보면 죽인다는 소문이 흘렀다. 나는 얼마 안 되는 뼈를 주워 병에 담고 먹을 것을 찾아 무너진 집들의 부엌이라고 생각되는 장소를 찾아 전전했다. 어느 농가의 정원 근처에서 만난 한 여성으로부터 패전 사실을 듣게 되었다. 8월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우주에 간 비행사는 하늘에서 본 지구의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현재 또다시 시작된 이라크 공격에 마음이 아프다. 사람들은 핵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시작한다. 생명의 존귀함과 세계 인류의 항구한 평화, 일본 헌법 9조의 이념을 소중히 하며 어리석은 전쟁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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