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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이 투하된 것은 내가 열여섯 살, 지금으로 말하면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당시 이마리(伊万里) 상업학교 4학년)
나가사키시 오하시마치에 있던 폭심지에서 1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미쓰비시 무기 제작소 오하시 공장에 제2차 세계대전을 위해, 근로 보국대로서 이마리 상업학교에서 학도동원되어 나가사키에 묵으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심해져서 일손 부족으로, 지금의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각지로 군대의 차가 다니는 도로를 만들거나, 터널을 파거나 하는 일을 하고 학교는 일주일에 이삼일 정도밖에 가지 않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학년 3학기부터 가족들과 반년이나 헤어져서 먼 나가사키로 와 있었습니다.
식사도 지금과 같은 하얀 쌀밥은 거의 없고, 콩비지나 무가 섞인 밥으로, 배는 고프고 설사하는 사람이 많고 아무리 힘들어도 국가를 위해서라며 버텼습니다.
일은, 전쟁에 사용할 커다란 폭탄을 만드는 (이것은, 공중어뢰라고 해서 비행기에 실어서 사람과 함께, 적의 군함을 향하여 부딪혀 침몰시키는 폭탄)큰 공장에서 밤낮 교대로 휴일도 없이, 익숙지 않은 일에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공장에서 700m 정도 떨어진 산골짜기 터널 공장에 있었습니다. 이 터널은, 한 개의 길이가 약 200m의 바람이 잘 통하는 곳으로 6개 늘어서 있고 중요한 기계가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숨겨져, 그 중간에 있는 선반 기계를 사용해서 공중어뢰의 중요한 부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매일같이 미국의 비행기 공습이 있어서 미쓰비시 무기 제작소 오하시 공장에서 동원된 여학생들이 일을 멈추고, 우리가 있는 안전한 터널 공장에서 적의 폭격기가 떠날 때까지 피난해 있었습니다.
원폭이 투하된 8월 9일도 아침부터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려서 많은 사람이 터널 공장으로 적기 폭격을 피해 피난왔지만, 10시 반이 지나 해제되어 경계경보로 바뀌었습니다.
피난 왔던 사람들이, 이제 각자 일하는 직장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던 마침 그때, 그 무서운 원자폭탄이 투하된 것입니다.
투하된 시간은 운명의 11시 2분.
갑자기 터널 안의 불이 꺼지고 캄캄해졌습니다.
동시에 100m 앞의 입구에서 번쩍하고 눈을 찌르는 듯한 섬광이 비치고, 후드득후드득하며 마치 거대한 태풍이 온 것 같은 굉장한 소리와 폭풍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입구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폭풍에 날려 온 것입니다.
기계 등에 내동댕이쳐진 채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신형폭탄이 떨어졌다”라고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3일 전, 히로시마가 대형폭탄으로 큰 피해를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그것이 원자폭탄이라고는 모르고, 굉장한 신형 폭탄이 투하되었다면서, 암흑 속에서 무서움에 떨며,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라며 친구와 걱정하며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지나자, 조금 전까지 터널에 피난왔던 여학생들이 다시 도망쳐 왔습니다. 일하러 가는 도중에 원폭이 떨어진 것입니다.
희미한 불빛으로 보니, 대부분이 머리는 흐트러지고 불에 타고, 피부와 뺨이 데어서 물집으로 문드러지고, 마치 유령같이 무서운 얼굴이 되어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로 약도 붕대도 없이, 그저 자기 손수건으로 상처를 누른 채로 터널로 도망쳐 온 것입니다. 열대여섯 살의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응급처치도 할 수 없고 “정신 차려, 힘내”라는 격려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는 터널 안에 있어서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후 리더의 지시로 부상자를 뒤로하고, 선로를 따라 20분 정도 떨어진 기숙사로 향했습니다.
도로는 건물이 전부 무너져 불바다가 되어 건널 수 없어서, 선로를 따라 네다섯 명의 동료와 함께, 철도 침목이 전부 타서 연기가 나는 곳을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의 좋은 날씨로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더운 날이었는데, 원폭으로 불기둥과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점심이 조금 지난 나가사키 상공은 암흑이 되어, 그 안을 통해서 태양이 누렇게 보이고 점점 떨어질 듯한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푸르디푸른 초목마저 타버리고, 선로에 연결된 길바닥에는, 검게 탄 시체가 줄줄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도 되지 않았다.
한여름이라 옷차림이 모두 알몸이나 마찬가지라서 특히 화상이 심했고 너덜너덜해 진 검게 탄 얼굴을 누르며 물을 찾아 비틀거리며 강으로 모이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 불에 타 죽은 소와 말과 함께 겹쳐져 죽어서 강에 떠있는 사람. 화상으로 물집이 생긴 사람들은 한결같이 물을 달라고 우리 발밑에 매달리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신체의 반이나 화상을 입으면 살 수 없다. 또한, 화상이 심하면 목이 말라 물을 찾고, 많이 마시면 죽는다고 하지만, 이 사람들도 분명히 어떤 물이라도 좋으니 어쨌든 물이 먹고 싶어서, 기름이 떠 있는 강물을 마시며 죽었습니다. 정말로 지옥과 같은 무섭고 참혹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렵사리 기숙사에 겨우 도착하니, 목조 집은 이미 전부 타고 타다 남은 불이 연기를 내고 있었습니다.
야근 때문에 지칠대로 지쳐서 자고 있던 친구들은, 폭풍 때문에 팬티차림으로 근처 논에 내팽개쳐지거나, 건물 아래에 깔려 타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같이 온 선생님의 지도로 다치지 않은 건강한 사람은, 본사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동료를 찾아내서 고향인 이마리로 데리고 가기로 했습니다.
나가사키의 거리는 불바다로 덮여, 공중어뢰를 만들고 있던 무기공장의 큰 지붕은 납작하게 찌그러지고 철골은 엿가락같이 구부러지고 거대한 가스 탱크도 심하게 기울어지고, 굴뚝 중간쯤에는 날려간 사람이 서커스처럼 공중에 매달려 죽어 있었습니다.
이 공장은, 원폭이 떨어진 폭심지로부터 1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현재 나가사키 대학이 있는 장소로, 나도 함께 동료를 찾으러 돌아다녀서, 이때 죽음의 재라고 불리는 방사능을 많이 맞은 것입니다.
이윽고 저녁이 가까워지고, 우리를 태우러 온 임시 열차가 후진하면서 왔습니다.
천천히 와서, 후진하는 기관차를 밀고 오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근처에서 멈춰, 철교가 무너져버려서 거기서부터 더는 갈 수 없었습니다.
지금의 우라카미역에서 상당히 가까운 지점이었습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타려고 했지만, 부상자가 우선이라서 다치거나 화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임시 들것이나 엎거나 해서 먼저 태우고 어렵게 좌석으로 옮겼습니다. 태우지 못한 사람들은, 화물열차 안으로 실었다.
간신히 탄 차 안에는 발 디딜 곳도 없는 만원상태로 부상과 화상으로 누군가가 움직이면 옆 사람에게 자극을 주어 모두가 아파하며 비명을 지른다. 유리가 박혀 피투성이인 사람. 화상으로 새까매져서 누구인지 분간이 안가는 사람. 괴로운 듯이 “이제 죽여줘”라며 헛소리를 계속 하거나 “물을 줘 물”이라며 간신히 소리를 내며 피를 토하면서 숨진 사람 등. 또한, 아무런 상처가 없는 사람도 차 안의 더위와 피비린내를 참을 수 없어, 구토를 하며 괴로워한다.
정말로 지옥 열차였습니다.
열차를 타지 못한 사람도 방사선과 열선으로 타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쓰러지고, 많은 사람이 줄줄이 죽었다고 합니다.
힘들고 긴 시간에 걸쳐서, 죽거나 상처 입은 사람을 응급수용하는 병원이 있는 역에서 내려, 밤을 새워 다음날 아침에 겨우 아리타(有田)역에 도착했습니다.
심한 화상을 입고 내 발밑에서 괴로운 듯 엎드리며 정신을 잃었던 동급생 T군도 하이키(早岐)역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얼마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을 계기로, 일주일 후인 1945년 8월 15일에 전쟁이 끝나고, 일본은 패배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 발의 원자폭탄 때문에 피폭자는 70만 명 이상에 달하며 30만 명 이상이 죽고, 지금도 전국에서 매년 6천 명 이상이 죽고 있습니다.
전국에는 약 30만 명의 피폭자가 있지만, 평균연령이 70세를 넘고 방사능의 피해도 있어서, 여러 가지 후유증으로 입원하거나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동급생과 인솔 선생님 모두 합쳐 피폭한 사람 90명 중 12명이 즉사, 그 후 3분의 1인 35명이 귀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나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몸이 좋지 않아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다행히 지금은 겨우 회복해서 이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다친 데 없이 건강했던 사람도, 병에 걸리면 금세 원폭 때문이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고, 정신적으로도 여러 가지 후유증을 안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는 3만 발의 핵무기가 있습니다. (보유국 7개국) 그 대부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5배에서 100 배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은, 정말이지 「세상의 지옥」을 만들었습니다.
원폭이 폭발한 순간에 방출된 열선으로 인간은 타죽고, 쇼크와 폭풍으로 폭심지에서 2∼3km 이내의 건물은 전부 무너지거나 타서, 뒤늦게 도망친 사람들은 집에 깔려서 화재로 타 죽었습니다.
게다가, 원폭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을 대량으로 방출하고, 지옥 같은 곳에서 도망친 사람도 모두 방사선을 맞았습니다.
피폭 후, 일주일 정도 지나 머리카락이 빠지고 잇몸과 코에서 피가 나며 피부에 보라색 반점이 생기고 고열을 내며 괴로워하면서 잇달아 죽어 갔습니다. 급성 방사선 증세였습니다.
핵무기는 그런 무서운 악마의 무기입니다 .
그래서 우리 피폭자는 하루라도 빨리 이 지구 상에서 핵무기를 없애려고 열심히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원폭과 전쟁 이야기를 잘 배워서, 전쟁의 공포와 평화에 대한 감사함을 마음에 새겨서 평화로운 세계가 계속되도록,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전해 주세요.
그리고 이지메와 폭력을 없애고 모두 사이좋고 즐겁게 학교에서 배우고, 장래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도록 노력하세요.
오늘은, 이 체육관에 「원폭과 인간전」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원자폭탄이 얼마나 무섭고 비참한지 그리고 평화로운 생활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보고 돌아가서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해 주세요.
이것으로 이야기를 마치며 마지막까지 열심히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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