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아키라씨, 당시 18세. 선박통신병으로 히로시마에 배속. 우지나에서 센다마치로 돌아가는 전차 속에서 격렬한 빛과 폭음이 덮쳐왔습니다. 피난 하는 도중에 본 광경은 이세상의 현실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재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물을 요구하는 모습이 지금도 강렬하게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선박사령부가 우지나에 있어서 낮에는 요원들이 출근했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 버립니다. 따라서 그곳에는 아무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경비원도 없었고, 공습이 있어도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특간대가 경비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8월5일 저녁부터 우지나에 머물고 6일 아침은 전차를 타고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그 날은 경계경보가 없었습니다. 전차를 타고 계속가면 히로시마역이였습니다. 가는도중에 왼쪽으로 돌면 미유키바시다리니까 슬슬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차도 천천히 달렸고 매 번 다니는 길이였기 때문에 느낌으로 알았습니다.
여느때처럼 달리고 있고 눈 앞에는 센다마치의 정류장이 보이는 순간이였습니다. 갑자기 눈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과 동시에 연기 비슷한 아지랑이같은 게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느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좌우간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전차가 멈췄습니다. 급정거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르르 쓰러졌습니다. 이거 큰일났구나, 내리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 입구로 몰려서 서로 밀치고 있는 복잡한 상태여서 마침내 내가 내릴 때에는 상당히 비어있었습니다. 제일 앞자리에는 운전수가 있었는데 힐끗 보니 그때가 여름이어서 하얀색 셔츠에 넥타이는 매지 않고 있었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셔츠는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차앞쪽에 직격탄을 맞았다고 느꼈습니다. 운전수는 쓰러지듯이 그곳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전차 앞에 서 있던 사람도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계단을 뛰어내려 전차 밖으로 나갔습니다. 주변은 땅거미 같은 어둠으로 가득차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발목조차 보이지 않았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냥 멍한 기분이어서 뭐가 뭔지 잘 몰랐습니다. 거기에 얼마나 서 있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서서히 날이 밝아왔습니다. 전신주가 넘어져 있었고 전깃줄이 그물처럼 늘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전 까지 그곳에는 가옥들이 나란히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두 납작하게 무너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흙먼지 냄새가 났습니다. 습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폐허가 된가옥들, 그 곳에 누구 한 사람도 없었고 아무 소리 하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집합 호령이 들렸습니다. 전차 도로에서 센다마치에 있는 초등학교까지 200미터 정도 입니다. 지금까지 매일 다니던 도로가 없었습니다. 집이 모두 무너져 도로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초등학교에 도착하자 2층 건물의 튼튼한 건물이였던 게 완전히 납작하게 무너져 있었습니다. 기와도 없고 목재들이 튀어나와 있고 형태 그 자체가 한 순간에 없어진 것입니다. 남아 있는 것은 운동장 뿐이고 건물이 덮쳐서 반 정도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재난이다, 라며 멍하니 보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뭔가가 움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뭐가 움직이고 있나해서 가 봤더니 제방으로 도망쳐온 시민이였습니다. 정말 너무 불쌍해 보였습니다. 일어설 기력도 없고 겹겹이 쌓여서 시궁창이쥐처럼 몸전체가 새까맣게 탔습니다. 목소리를 낼 기력도 없고 머리카락은 위로 세워져 덥수룩하게 엉켜져 눈과 입도 구별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입고 있는 옷은 너덜너덜한 채로 걸치고 있었지만 거의 찢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맨발이였고 그러한 사람이 몇 십명이나 거기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군인아저씨, 물…, 물…" 하는그 소리가 숨이 넘어가기 전에 마치 애원하는 것 같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것을 보면서 나는 물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도에서 깨끗한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상사에게 혼이 날지라도, 이 사람은 죽을 지도 몰라, 그냥 내버려두면 죽지 않을까 라고. 그렇다면 임종할 때 주는 물은 아니지만 물을 마시게 해주는 것이 이분들의 숙원일지도 몰라. 그래도 죽는다면 별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그렇게 하고있는데 이번에는 불이 났습니다.
무너진집 잔해에 깔려있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대로 히지야마산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히지야마 산기슭까지 도착했습니다. 본부대의 막사는 모두 무너져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산기슭의 나무들이 있었던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그 주변에 많은 피해자들이 웅크리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우리들은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의약품도 없었습니다. 그날 밤 히로시마 거리의 화재 상황은 거대한 용광로 같았습니다. 하룻밤 내내 새빨갛게 손 언저리가 밤인데도 보여서 저녁놀 같았습니다. 나쁜 표현입니다만 밤하늘이 예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하룻밤 내내 화끈거렸습니다. 히지야마산 숲속도 그랬습니다.
그리고나서 우지나의 선박 사령부의 옆에 있는 선박연습부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군대가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특간대의 소속이였지만 모두 빈사상태였습니다. 그런 군대만 있었고 계속 잠만 잤습니다. 낮에는 더웠습니다만 그런 감각은 이제 없어지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프다거나 편하다거나 하는 인간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피부가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방사선의 중성자는 조직 결합을 붕괴시킵니다. 숨은 붙어있었습니다만 살이 녹아내리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곳에는 고약한 살 냄새와 심한 시체의 악취가 떠돌고 있었습니다. 한 두 명이 아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쭉 늘어서 있었습니다. 간호하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약도 없었습니다. 소독약을 바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붕대로 처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붕대를 감아도 고름과 피의 덩어리나 체액 같은 것이 스며나와서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이 썩어서 무언가 작은 것들이 굼실굼실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더기였습니다. 얼굴이나 눈, 코. 그리고 화상으로 짓무른 부분에도 전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것이 1주일만 지나면 이렇게나 커집니다. 그것이 굼실굼실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골라내었습니다만 도저히 따라가지 못 했습니다. 그런 구더기를 보니 정말로 오싹했습니다. 입, 눈, 코가 배로 부풀어서 아무말도 못하고 눈도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사람의 생김새를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누구냐고 물어도 알 수 없었습니다. 이름표를 붙여놓았기 때문에 가끔씩 이름표가 남아있는 사람은 누군지 알 수 있었습니다. 물어봐도 본인은 아무것도 말하지 못 합니다. 입술이 2배 정도 부풀어 올랐기 때문에 구더기와 피바다. 그리고 고름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였으니 열도 있었습니다. 양동이에 물을 길어와 걸레를 볼에 올려두는 것뿐. 그것이 간호일의 전부였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처치일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 했습니다. 중상자가 무엇인가 말하는 것은 "물, 물"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물을 마시고 싶다고.
그러나 감시 반장이나 상관은 "절대 물을 주지 마" 라고 명령했습니다. 머리맡의 양동이에서 수건을 짜서 볼 위에 얹습니다. 그러면 그 양동이의 물이 더러워집니다. 조금 기운이 있는 사람은 밤중에 기어가서 양동이에 머리를 들이대고 그 물을 마셨습니다. 우리들은 마시지 말라는 말을 하지 못 했습니다. 보고도 못 본 척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나 이튿날쯤에 반드시 몸이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도 죽을 것이라면 물을 줘도 좋지 않나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거의 매일 아침이 되면 차가워져 죽어있었습니다. 집이 무너져 목재가 많이 있기 때문에 목재 위에 시체를 나란히 놓고 이름을 붙혀 태웠습니다.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의 시체를 태웠습니다. 완전히 재가 될 때까지 태웠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자 방송이 있다며 집합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뭐가 뭔지 몰랐습니다만 정오쯤 집합해서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치직거리는 잡음이 심해서 정확히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만 천황폐하의 목소리를 태어나서 처음 들었습니다. 분위기로 이건 전쟁이 끝났다고 알았습니다.
그리고 9월 10일, 지금의 산요선 화물열차에 태워진 뒤 무개차의 어둠 속에서 하루 동안 이동해 오오가키역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킨테츠의 쿠와나에서 내린 뒤 피난처까지 갔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 피난해 있던 가족들은 설마 제가 돌아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히로시마에서 큰일이 나서. 나는 이제 죽었다고 포기하고 있던 차에 돌아와서 깜짝 놀랐던 것이었습니다.
【전하고 싶은것】
우선,전쟁은 일어나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전쟁은 과학전쟁이겠지요.저희때는 육탄전이였습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올라가 에도시대로 돌아가보면 1대1의 싸움이였습니다. 그것이 점점 청일・러일전쟁때는 대포,그 다음으로 기관총,비행기 그리고 원폭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무기들의 규모는 점점 커져가고 대량살육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원폭 한발이면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갈수 있는 시대입니다. 기관총만으로는 이렇게 많은 목숨을 앗아갈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더이상 전쟁에서 자기만 살아남는 다거나 자신의 나라만 살아남는다라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상대국으로 원폭을 쏠 경우,상대국에서도 똑같이 원자력폭탄을 쏘겠죠. 양쪽에서 수십발의 원자력폭탄을 쏘게 되면 결국 인류는 멸망하게 되고 말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수 없게 되는것이지요. 직접적으로 본인이 피폭을 당하지 않아도 방사능비,물이나 토양도 오염이 됩니다. 모든 식량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멀쩡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게 되겠죠. 전쟁을 일으킨다는 생각은 더이상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자원과 자금,그리고 기술과 과학을 전쟁준비에 쓰려하지말고 인간의 생활에 더 도움을 주는 쪽으로 쓰이게 되면 이 지구는 그야말로
번역 이동현 김현아 리나
번역 감수 김미화 나가하마 타쿠마
번역 코디네이트:NET-GTAS(피폭자 증언의 세계화를 위한 번역자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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