国立広島・長崎原爆死没者追悼平和祈念館 平和情報ネットワーク GLOBAL NETWORK JapaneaseEnglish
HOME

HOME/낭독 선택하기/낭독 듣기

朗読音声を聞く

낭독을 들으시려면 재생 단추를 눌러 주세요.
피폭 50년 
요코야마 요시에(YOKOYAMA Yoshie) 
성별 여성  피폭 시 연령  
피폭지 나가사키(직접피폭)  집필 연도 1995 
피폭 장소 나가사키시니시키타고우(현재의나가사키시니시키타마치) 
피폭 시 직업 등  
피폭 시 소속  
소속관 국립나가사키 원폭사망자추도평화기념관 
당시 저는 현재의 니시키타마치(西北町)에서 피폭하였습니다.
8월 9일. 아침부터 공습경보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소와 같은 시간에 늘 그렇듯이 여동생은 학도동원으로 일하고 있던 시로야마(城山) 초등학교에 갔습니다. 11시를 막 지났을 때 번쩍하는 섬광을 보았습니다. 그 소리는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집안의 모든 가재도구와 문들이 쓰러져 있었고 라디오는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였습니다. 밖으로 급히 달려나가 보니 집 옆에 있는 예전부터 창고 대신에 사용하던 초가집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집 주위의 산과 들이 전부 불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정말 대단한 폭탄이 떨어졌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집 근처에 드문드문 있던 10채 정도의 농가는 그 중에서 단 2채를 남기고 모조리 불타버렸습니다. 그 불길 가운데 소 두 마리가 나란히 높은 산 쪽으로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집의 불길이 사그라진 저녁 무렵에 두 마리의 소는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때부터 소도 사람도 같이 집 근처의 산속에서 생활했습니다. 아마 3시나 4시 정도가 되었을 때, 어머니가 여동생의 마중을 나갔습니다.
 당시 여동생은 여자상업학교의 4학년이었으며, 미쓰비시 무기제작소의 총무부 급여과에 학도동원으로 시로야마 초등학교의 3층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3층 사무실에 몇 분이 계셨는지 확실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분이 계실까요. 당시 여동생의 말에 따르면, 그 순간 교실 안에서 대부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상사로 계시던 남자분의 뛰어내릴 수 있으면 뛰어내리라는 말을 듣고 정말로 뛰어내린 동생은 맨발로 기어왔습니다. 건물 3층에서 뛰어내려 기적적으로 숨이 붙은 상태에서, 현재의 우라카미(浦上) 차고 부근의 풀밭까지 기어와서 쓰러져 있던 동생을 다행히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장소에 있지 않고, 구호열차로 오무라(大村)나 이사하야(諫早)로 실려가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죽었다면 아마도 동생은 찾아낼 수 없었을 겁니다. 정말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동생을 데리고 돌아왔지만 집은 모조리 불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앞산 아래에 있는 조그만 방공호 안에서 이틀을 지냈습니다. 머리와 얼굴 전체에 유리창 파편이 박혀있었지만 아무런 치료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2, 3일 후에 근처에 있는 화재를 모면한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 댁에 국철 진료소에 근무하시는 분이 있어서, 부상을 입은 지 2, 3일 만에 비로소 얼굴과 머리의 유리 파편들을 조금씩 빼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조각조각 깨진 파편들을 얼굴에서 말끔히 빼내기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딱 열흘 후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원폭을 너무나도 증오합니다. 아무리 미워해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송구스럽습니다만, 제 가족의 불행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원폭 2개월 전에 바로 아래 여동생이 죽었습니다. 여자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예금국에 근무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감기가 악화되어 늑막에 물이 차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여동생은 여자상업학교를 졸업하였기 때문에 지금도 졸업명부에 그 이름이 분명히 올라 있습니다. 하지만 원폭으로 죽은 여동생은 그때 4학년이었기 때문에 졸업명부에 이름조차 오르지 못했습니다. 불쌍합니다. 지금도 그 시로야마 초등학교를 보면 그때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뛰어내린 여동생을 떠올리며 몸서리치곤 합니다. 하지만, 시신조차 찾지 못한 많은 분이 있는 가운데 여동생은 아니 우리 가족은 행복했습니다. 비록 열흘 동안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지만, 함께 지낼 수 있었고 직접 관을 만들어서 보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원폭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와 크디 큰 거목까지 전부 쓰러뜨리고 불태워버리는 그 비참한 광경을 기억에서 지울 수 없습니다.
피폭 2개월 전에 죽은 여동생은 사후의 얼굴이 정말 예뻤는데, 이 여동생이 숨을 거두었을 때는 새카맣게 변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폭의 낙진을 마셔버린 탓이겠지요. 지금도 그 검게 변한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기념관에 오시면 보다 많은 낭독 음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 게재된 콘텐츠는 정기적으로 갱신됩니다.
▲Top of page
HOMEに戻る
Copyright(c)국립히로시마 원폭사망자추도평화기념관
Copyright(c)국립나가사키 원폭사망자추도평화기념관
본 홈페이지에 게재되어있는 사진이나 문장 등의
무단전재・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初めての方へ個人情報保護方針
日本語 英語 ハングル語 中国語 その他の言語